영화의 기본 정보
영상 제목 : 레미제라블
감독 : 톰 후퍼
영화 공개일 : 2012.12.9
본 날짜 : 2024.8.23
영상 길이 :158분
시청 방법 : 쿠팡플레이
보게 된 동기
워낙 유명한 소설, 뮤지컬, 영화이기도 하고, OST와 영화 명장면도 워낙 유명하다보니 유튜브의 알고리즘을 타고 다니면서 몇몇 장면들로 미리 접했었다. 하지만 처음부터 끝가지 본 적은 한 번도 없었기에 스토리에 대해 전혀 몰랐고, 그저 파리 혁명과 관련되어 있다는 사실과 장 발장이 나온다는 사실만 알고 있었다. 장 발장이 빵을 훔쳤다는 사실도 워낙 유명하기에 알고는 있었지만, 왜 훔쳤는지, 그 이후로 어떻게 됐는지에 대해서는 전혀 몰랐다. 이제 더 미뤘다간 정말 평생 안 보게 생겼다는 경각심이 들었다. 그래서 마음을 먹었다.
내맘대로 글쓰기
사람에게 가장 큰 영향을 주는 존재는 사람이다. 그리고 변화를 줄 사람과 변화될 수 있는 마음을 이어주는 건 신이다.
영화의 시점은 1789 프랑스 혁명이 일어난 지 몇 년 뒤에 새로운 왕이 즉위(아마 나폴레옹 즉위 시점이지 않을까)된 시점에서 시작된다. 영화에는 다양한 갈등의 현장들이 나오고, 그 갈등의 주범에는 ‘미제라블’이 있다. 미제라블은 영단어인 miserable로 이어지고, 천하고 딱한 사람들을 통틀어서 말한다. 그리고 이들이 겪는 비참하고 슬픈 순간 들로 영화의 이야기가 이어진다.
뮤지컬은 배역과 음악이 주를 이룬다. 어떤 사람이 연기를 하고, 어떤 노래를 부르냐로 눈과 귀가 즐거워지는 종합 예술이다. 그렇기에 뮤지컬 영화 역시, 등장인물과 노래가 주를 이룬다. 영화에서는 다양한 미제라블들의 갈등 상황이 등장한다.
갈등의 양상
1. 장 발장 vs 자베르(경찰) : 자베르의 평생에 걸친 장 발장 추격
2. 장 발장 내면과의 갈등 : 강도의 삶을 살 것인가, 구원받은 삶을 살 것인가
3. 팡틴(코제트 어머니) vs 공장 사람들 &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 관리자 : 팡틴을 시기한 공장 사람들의 내쫓음
4. 장 발장 vs 팡틴 : 오해한 팡틴과 그녀를 위로하는 장 발장
5. 코제트 & 장 발장 vs 테나르디에 가족 : 테나르디에 가족으로부터 코제트를 구출
6. 코제트 vs 에포닌 (에포닌의 일방적인 갈등) : 에포닌은 마리우스를 짝사랑 했지만, 마리우스는 코제트와 사랑에 빠져 슬퍼함
7. 마리우스 vs 아베쎄의 벗들 : 마리우스의 개인적인 사랑과 자유를 위한 사투 중 무엇을 선택할 지에 대한 갈등
8. 프랑스 정부 vs 아베쎄의 벗들
9. 마리우스 vs 장 발장 : 코제트를 마리우스에게 시집을 보낼 것인가
이 갈등의 양상에는 두 가지 특징을 찾을 수 있는데,
1. 갈등의 선과 악에는 천민/부유층으로 나눌 수가 없다. 팡틴을 내몰은 공장 사람들과 코제트를 착취한 테나르디에 가족은 같은 천민층임에도 가해자가 된다.마리우스는 우리가 보기에 선한 사람이면서 대의를 위해 희생도 하지만, 그는 부족할 거 없는 높은 집안 출신이다. 자베르는 장 발장을 잡기 위해 혈안이다보니 관객들에게 다양한 고구마를 선사하지만, 그는 맡은 소임에 최선을 다한다는 점에서 악이라고 칭할 수 있는 지에 대해 함부로 말할 수 없다
2. 갈등은 순차적으로 일어나는 게 아니라, 복합적이면서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난다. 영화 전반에 걸쳐 장 발장과 자베르의 갈등이 깔린 채로 시작되며, 사회적 배경으로는 프랑스 상류층 vs 하층민의 갈등이 있고, 중간중간 등장인물 간의 갈등으로 영화의 스토리가 전개된다.
이러한 갈등들은 대부분 장 발장의 손에서 마무리가 된다.
장 발장은 성당의 은접시와 촛대를 훔치고 달아났다가 잡혔는데, 미리엘 주교는 장 발장을 용서하고 오히려 더 챙겨준다. 장 발장은 미리엘 주교의 말씀과 은촛대를 갖고, 죄수의 삶에서 벗어나 새로운 삶을 시작한다.
이때부터 장 발장의 마음에는 커다란 변화가 나타나고 이걸 삶의 원칙이자 철학으로 삼는다.
1. 죄수의 삶이 아니라 떳떳한 나 장발 장의 삶을 산다.
2. 나를 구원해준 신이 보기에 기뻐하는 삶을 산다.
3. 가난한 자에게 베풀며, 항상 용서하는 삶을 산다.
4. 불의에 맞선다.
5. 맡은 바에 책임을 다한다.
이 원칙을 고수하려는 자세 속에서 시장의 삶을 포기한 채 코제트를 위한 삶을 산다. 억울한 누명을 쓴 사람을 구하고, 팡틴과의 의리를 지키기 위해서 말이다. 이 자세는 자베르와의 갈등에서도 빛을 발한다. 자베르에게 온갖 수모를 당하였음에도 그를 살려주고 위해준다. 게다가 마리우스의 진심을 읽고는 그의 목숨을 직접 구하고 딸과의 만남을 허락해준다.
사실 장 발장은 자신의 죄를 철저하게 숨길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그렇다면 수모를 겪지 않았을 것이고, 평탄한 삶을 살았을 것이다. 심지어 시장의 삶도 굉장히 도덕적으로 살아왔다. 힘든 사람들에게 공장 일거리를 주고, 심지어 나무에 깔린 사람을 직접 나서서 구해주는 사람이었다. 그런데도 자신의 죄를 직시하고 회피하지 않았다.
실제 성경에도 신이 죄를 용서해준다는 말은 있지만, 그 죄값을 없앨 수 있다는 말은 없다. 평생 죄의 꼬리표는 뒤따른다. 실제로 다윗이 밧세바와의 동침 이후 회개 기도 했음에도 당한 수모는 너무나도 참혹했다. 장 발장 또한 비슷한 삶을 살았다고 볼 수 있다. 다만, 선택의 순간에서 죄의 대가를 피하지 않았고, 그 덕에 코제트와 마리우스에게 새로운 삶을 선물했다.
자베르는 두 가지 방면으로 아쉬움이 남는 캐릭터이다. 캐릭터의 설정이 아쉽다는 것은 아니고, 인격에 대한 안타까움을 말한다.
1. ‘신의 뜻’에 대한 해석을 너무 한 쪽으로만 해석했고 고집했다.
2. 회개와 늬우침의 기회가 주어졌지만, 이를 두려워하고 자살을 선택했다.
‘신의 뜻'이라는 건 굉장히 조심스럽고 위험한 해석이다. 일단 신 자체의 존재에 대한 의견도 갈리고, 성경을 가지고도 다양한 종파와 이단이 나타나기 때문이다.
자베르는 신의 뜻으로 ‘정의'를 강하게 내세웠다. 죄를 심판하는 것이 신의 뜻이자 자신의 소명이라고 생각하고 평생을 살아왔다. 실제로 성경에선 ‘정의'를 중요하게 내세운다. 죄를 지은 자에게는 강한 심판이 내려진다. 하지만 또 다른 면모를 볼 필요가 있다. 그건 바로 사랑과 용서, 그리고 새로운 시작이다. ‘한 번 죄인은 영원한 죄인이다. 그렇기에 평생을 죄의 죽음 아래에서 살아야한다.’는 뜻은 예수의 등장으로 끝이 난다. 예수가 직접 자신을 십자가에 못 박음으로써 모든 죄를 씻겨나가고, 죄의 용서와 사랑의 키워드가 나타난다. 죄인은 죄에 대한 대가를 치룰 필요가 있지만, 사랑으로 교화하고 새 삶을 살게 할 필요가 있다. 심지어 장 발장의 죄목이 ‘가족을 위해 빵을 훔쳤다'는 거라면 더더욱 교화의 가능성이 있음에도, 자베르는 그 한 치를 용납하지 않았다. 반면 미리엘 주교는 신의 뜻을 올바르게 알고 장 발장에게 용서를 했기 때문에, 새로운 삶을 살 기회를 줄 수 있었다.
자베르는 계속 자기 뜻을 고집하다가, 장 발장이 자신의 목숨을 살려주는 장면에서 꺾이기 시작한다. 점점 자신이 해석한 신의 뜻에 균열이 생기고, 자신이 올바른 길을 걷고 있는 지에 대해 강한 혼동과 회의가 발생한다. 여기에서 선택지가 생긴다. ‘내 뜻을 굽히고 새로운 삶을 살 것인가, 아니면 죽어버릴 것인가.’ 자베르는 후자를 선택한다. 비슷한 예시가 성경에도 등장한다. 바로 ‘유다 / 베드로 & 바울’이다.
유다는 예수님을 은화에 팔았다가 그 죄를 깨닫고는 죄책감에 못 이겨 자살을 한다. 반면에 베드로는 예수님을 세 번 부인하고 도망쳤음에도 그 죄를 회개하고 개심하여 예수님의 말씀을 전파하는 데에 삶을 건다. 바울은 유대인 ‘사울'로 살면서 그리스도인들을 처죽였지만, 눈이 멀고 다시 뜨이는 기적을 체험하고선 마음을 개심하고 일생을 받쳐 전도에 힘쓴다. 유다는 죄값을 치루지도 못한 채 자살로 도망쳤지만, 베드로와 바울은 평생을 죄책감을 갖고 살면서도 종교 지도자로 거듭나 사람들을 돕는 데에 힘쓴다.
자베르는 유다의 삶을 선택해버렸다. 자신의 잘못된 해석으로 비롯된 죄값도 제대로 치루지 못하고 도망쳐버렸다. 더욱이나 자신의 소신과 정의를 따랐던 인물이기에 안타깝고 비참하다. 나도 내 소신과 생각이 부정당할 순간이 등장할 것이다. 때로는 내가 믿어왔던 모든 옳음의 탑이 무너질 순간도 올 것이다. 그 때에 어떤 선택을 하고 어떤 삶을 살 것인지는 오로지 내 선택에 달렸다. 그때, 장 발장처럼 과거를 부정하지 않고 온전히 짊어진 채 앞으로의 삶에 희망을 쌓아가는 사람이 되겠다고 다짐하게 해준다.
여담
뮤지컬 영화답게 귀가 즐거운 영화였다.
다만, 너무 모든 대사가 노래와 함께 불러지다보니 생뚱맞거나 지루한 부분도 있었다. 그리고 실제 뮤지컬 배우들이 부른 노래가 정말 압도적이라고 하는데, 한 번 찾아서 들어봐야겠다.
실제 책은 엄청 긴데, 영화는 러닝 타임 제한이 있기 때문에 엄청 축약한 부분이 많다고 한다. 실제로 장면 속에서 ‘갑자기 이렇게 이어진다고?’ 하는 부분이 참 많았다.
또 다른 레 미제라블
2019년에 제작되고 한국에는 2021년 개봉된 또 다른 레 미제라블이 있다.
프랑스의 이민자 문제를 다룬 영화라고 하는데, 이 역시 꽤나 호평을 받는 영화라고 한다. 한 번 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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